≪Cappyglass crafted by fresco studio≫ Table talk with Shop NA-BE
Summer 2025
캐피 글라스가 서울에 도착한 날, 나배를 통해 컵을 전달받았습니다. 그날 원석은 캐피 바 테이블에 앉았고, 셋이서 두어 시간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대화 속에서 비로소 지금까지의 과정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판단들이 오갔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그리고 왜 이 잔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결과물이 되었는지를 말로 풀 수 있게 된 건 제품이 완성되고 나서야 가능해졌습니다.
어떤 물건은 시간을 두고 나눈 이야기 속에 천천히 형체를 갖춰나가기도 합니다. 얼마 전 소개했던, 캐피글라스도 그런 종류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작년 겨울, 나배의 원석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캐피를 찾았습니다. 나배가 시작된 지 이제 막 3주가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매장에는 캐피의 주영이 있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날의 대화는 ‘무엇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이나 물건에 대한 이야기조차 당연히 없었습니다. 이후 원석의 방문이 더해졌고, 캐피에게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자며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저희는 그와 몇 번의 만남을 가진 것이 다였지만, 나배와 함께라면 충분히 즐거운 작업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나배는 빠르게 지나가는 유행보다 오래 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소개하는 태도에 집중합니다.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의 시선과 손끝이 드러나는 구성은, 하나의 관점이자 기록의 형태로 이어집니다. 저희는 작업 방식과 제품을 고르는 기준, 사람들과의 거리감, 그리고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에 대해 시간을 갖고 이야기했습니다. 결과보다는 오고가는 의논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무엇을 만들지’는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결과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리라는 소재가 떠올랐습니다. 계절이 봄으로 넘어가던 참이었고, 마음에 드는 세라믹 잔은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아이스 핸드드립 커피나 아메리카노를 완벽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잔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어떤 컵들은 너무 실험도구처럼 느껴졌어요. 물건으로서의 균형이 사라진 느낌이었달까.”
나배가 소개하고 다루는 잔들에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저 예쁜 디자인을 고른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의 손을 거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를 포함한 것이었습니다. 캐피가 커피를 고르고, 공간을 운영하고, 음료를 내는 방식과도 겹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어떤 태도로 만들어졌는지, 일상에서 조화롭게 쓰일 수 있는 균형을 갖췄는지, 그리고 과정을 우리가 스스로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지에 있습니다. 프레스코 스튜디오와의 연결은 자연스러웠습니다. 오사카 외곽의 유리 공방은 디자인만큼이나, 제작 환경이 눈에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효율적인 생산 대신 손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을 통해 정밀함을 추구하는 구조. 설명하지 않아도 납득되는 결과물이었습니다.
“프레스코 스튜디오의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일하고 있었어요. 디자인보다 제작자의 태도가 먼저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캐피글라스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눈에 띄는 자극적인 디자인은 아니지만, 왜 이걸 만들었는지 설명할 수 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마침 이 작업은 캐피의 1주년 시기와 겹쳐 있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프롤로그 팀을 통해 좋은 커피를 고르고, 사람을 만나고, 크고 작은 결정을 반복하며 만들어온 과정이 있었다면, 이번 협업은 그런 기준을 외부에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던 첫 시도였습니다.
“이번 협업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선택 기준을 처음으로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라는 질문만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가 중요한 시기처럼 느껴집니다. 이번 작업은 그 출발점이 되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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